양지윤(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양지윤(대안공간 루프 디렉터)
장영원은 전월세 계약기간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며 서울시와 경기도를 오가며 살아간다. 반복적으로 이주하는 제 개인의 삶에서 비롯한 <희미한 교차> 연작을 제작한다. <희미한 교차 vol.1 Goodbye/welcome: 흔들리는 장소, 이동 지점 찾기(2015)>는 도시 경계 표지판을 기록한 23페이지 분량의 소책자 작업이다. ‘안녕하 가십시오 안산시’, ‘미래를 키우는 생명도시 시흥입니다’와 같은 행정적 구획 표지판을 기록한 것이다.
<희미한 교차 vol.2_ J에게(2016)>는 건설되거나 허물어지길 반복하는 도시를 기록한 영상과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가 담긴 영상이다. 도시를 구획하는 행정 시스템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남아 있다. 작가는 이를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불안한 경계의 장소들'라 말한다. 두 작업 모두 발견된 동시에 만들어진 것이며 공적인 동시에 사적인 것이 된다. <신도시 생활백서(2016)>는 당시 경기도 북부에서 건설 중이던 신도시의 생성 과정을 기록한 출판 작업이다. 일산, 삼송, 지축 등이 위치한 고양시를 시작으로 운정과 교하가 위치한 파주, 다산 신도시로 대표되는 의정부 등을 기록한다. 작가는 신도시로 개발되기 이전의 장소적 풍경과 변화의 과정을 신체적 경험을 통해 관찰한다. 지역의 토착민이 만들어 온 오래된 문화와 ‘신흥 메가 시티’를 내세우는 도시 개발의 미래가 교차한다.
<제스쳐: 토마토와 풍경(2023)>은 고양시 서삼릉 답사 때 발견한 주변 풍경에서 출발한다. 능 주변에 있을 만한 소나무와 참나무, 유해와 비석을 옮겨 심어 새롭게 만든 장소였다. 작가는 구굴 지도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풍경으로서 장소’들을 수집한 영상과 토마토를 불편하게 먹는 퍼포머를 촬영한 영상을 나란히 배치한다.
이 일련의 작업은 열거와 병치라는 아카이브의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발견된 이미지, 오브제, 텍스트를 통해, 망각되거나 주변적인 정보를 제 자신의 삶과 인터랙티브한 것으로 만들려는 예술가적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장영원의 설치 작업은 아카이브의 방식을 보다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오브젝트> 연작은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미2사단 캠프 그리브스의 장교 숙소에서 제작했다. 이곳은 곤돌라를 설치하여 관광지로 활용하기 직전, 잠시 남겨둔 공간이다. <오브젝트(붕괴, 2019>에서 콘크리트 기둥 위 ‘나 니들 시러’라고 스프레이 페인트가 쓰여 있는데, 이는 2014년 두 명의 대학생이 국회 기둥에 검은 락커로 칠한 문구를 재현한 것이다. <오브젝트(모래, 2019)>는 가공한 건설 폐자재, 시멘트, 라쳇 벨트 같은 소재를 사용하고, <오브젝트 (방향, 2019>는 나무, 락카, 바퀴, 시멘트, 석고보도 같은 소재를 사용하여 입방체 모양의 형태를 구축한다. <오브젝트 (기둥, 2019)>은 시멘트, 나무, 종이와 1970년대 대전차 방호벽 파쇄물을 바퀴 달린 나무 팔레트 위에 놓는다. 가느다란 붉은 색 줄로 고정한 채, 원형 기둥 형태의 모뉴먼트가 전시장에 위태롭게 서있다
<오브젝트> 연작은 비-미니멀리즘적 소재들을 사용하여 기하학적 모양의 미니멀리즘 형태를 구축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미니멀리즘 조각이 지향하던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차용하여, 흠집 투성이 콘크리트 입방체와 풀로 채워진 개방된 상자를 만들고, 이를 지지하는 나무 받침에 바퀴를 달아 이동 가능한 미니멀리즘 형태를 구축한다. 신도시 건설의 역사에서 버려진 대상들이 갖는 형태를 수많은 연극적 이미지로 전시장에 놓으며, 추상과 구상, 구조와 지시, 즉물적인 것과 은유적인 것 사이에서 그의 작업이 있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삶을 이상화하거나 역사적인 기억을 기념비화하지 않는 공공 조각을 뒤튼다. 마치 현대의 폼페이에 세워진, 파국으로 치닫는 사회경제적 폭력에 대한 의도치 않은 기념비가 된 이 설치 작업들은 유령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장영원은 기억상실이 팽배한 시기에 소비주의에 의해 버려진 대상들을 재활용하여 예술 안에 재배치한다. 이는 다른 과거를 계속해서 재생시키려는 예술 실천이 된다. 그의 설치물은 실용적인 물건과 일상적인 장소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제 원래 기능을 부정하고 딱딱한 덩어리가 되었을 뿐이다. 각자의 즉물적 흔적이 상징적 흔적으로, 서울 도시 개발에 대해 잊고 싶은 기억으로 전이한다.
2019년부터 22년까지 제작한 <장파리 모험> 작업에서 작가는 작은 제안을 하는 위치를 자처한다. 작가는 파주 장파리 지역을 여행하며 여정을 영상 촬영할 인물들을 모집하고, 여기에 신청한 여성들이 촬영한 영상을 편집한 것이 그의 작업이다. 참가자는 전형적인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민간인통제선 바로 옆 임진강 건너 DMZ를 바라보는 장파리를 여행한다. 문산역에서 시작하는 영상 속에는 군복 입은 20대 남성들이 즐비한 사진관 유리벽,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조합 파주지구 건물 외벽, 오래되어 페인트가 벗겨진 콘크리트 주유소, 임진강 나루 반구정 등을 포함한다. 이와 함께 제가 살던 지역을 기억하는 주민들 인터뷰와 그들이 모아둔 신문 기사 같은 한국 근현대사에 관한 사적인 아카이브 자료가 포함된다.
<연습 없이 연습(2023)>에서 장영원 작가는 촬영과 퍼포먼서의 역할로 두 명의 출연자를 섭외한다. 작가가 적은 6장의 스코어 종이를 받아 든 둘은 상대가 보지 못하게 랜덤 하게 1장씩 총 3장을 펼치며 행위를 한다. 예를 들어 촬영자는 “그곳은 매우 추상적인 장소입니다.”라는 스코어를, 퍼포머는 “나눠지거나 합쳐지거나. 때때로 원형을 그립니다.”라는 스코어를 마주한다. 작가는 퍼포먼스의 연습 과정을 기록한 것이라 말한다. 연습은 ‘익숙하기 위해 되풀이 하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영상은 그러한 반복성 없는 연습을 담는다는 것이다.
장영원은 서울 주변 지역에서 발생하던 사회 변화의 흔적을 두려운 낯섦이라는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 왔다. 상실된 것을 예술 실천으로 재생시키고, 사회적 신체에 쓰여진 역사의 흔적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장소’를 둘러싼 객관적 사실들과 개인적 믿음이 부딪히거나 미끄러질 때 발생하는 지점에 관한 작가의 기록이다.